요즘 법정 관련 뉴스를 보면 참 여러 생각이 든다. 특히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재판에 나와 내놓는 말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 얼마 전 본 기사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내란 관련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계엄은 정당했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사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태도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런 궤변은 단순히 말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발언은 명백한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국민의 상식과 법적 판단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국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적 평가는 결국 법정에서의 증거와 논리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듯이 말한다. 이는 마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엄마에게 “나는 착한 일을 한 거야”라고 우기는 모습과 같다. 하지만 법정은 그런 우김을 받아주지 않는다. 법원은 엄격한 증거 규칙과 절차에 따라 판단하며, 궤변은 오히려 그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방어하려는 본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고 믿고 싶어 하고, 주변의 조언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변호인단과 함께 치밀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자기 합리화’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논리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특히 권력이나 명예가 걸린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의 많은 정치적 재판에서도 피고인들이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궤변을 일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핵심 인물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흔한 패턴이다.
이런 궤변은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혼 소송에서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양육권 다툼이나 재산 분할 문제에서 서로의 잘못만 부각시키며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상속이나 재산 문제는 법률 지식이 없으면 불리해지기 쉽다. 만약 이런 문제로 고민이 있다면 상속전문변호사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상속 전문 변호사들은 이런 분쟁에서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법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그들은 고객에게 “법정에서 이기려면 감정을 내려놓고 사실과 증거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종종 감정에 휩쓸려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다가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몇 년 전 지인의 상속 문제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그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제들과 재산 분배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평소에는 사이좋은 형제들이었지만, 유산 문제가 불거지자 서로를 믿지 못하고 법정까지 가게 되었다.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고 긴 시간 동안 소송을 진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 간의 정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법정에서 서로를 향해 독한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법정이 단순히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유산 문제가 이렇게까지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소송은 몇 년 만에 끝났지만, 그들은 더 이상 형제가 아니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잘못을 더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온갖 논리를 동원한다. 특히 재산 문제에서는 상대방이 숨긴 재산이 있는지 샅샅이 조사하고, 심지어는 과거의 사소한 잘못까지 들춰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식의 궤변은 오히려 법원의 신뢰를 잃게 만들 뿐이다. 법관들은 수많은 사건을 경험하며 사람들의 말이 진실인지 궤변인지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증거와 논리에 기반해 판단하며, 말의 그럴듯함에 현혹되지 않는다.
법정에서의 궤변은 또한 사회적 무감각을 반영하기도 한다. 피고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그들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란 관련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계엄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가 얼마나 깊이 분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법과 정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법정은 단순히 개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재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법정은 인간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다. 어떤 이는 진실을 말하고, 어떤 이는 궤변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원의 판결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라는 점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도 사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법원은 증거와 논리에 기반해 판단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는 바로 서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부당한 행위들이 법정에서 바로잡혀 왔다. 예를 들어, 과거 독재 정권 시절의 부정 선거나 인권 유린 사건들이 법정에서 다뤄지면서 진실이 규명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된 사례가 많다. 따라서 법정의 판결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앞으로도 이런 사건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법정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사회의 부조리를 발견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이므로, 우리 모두 법의 가치를 존중하고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법정에서의 궤변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의 정신은 결코 궤변에 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